고향 마을 입구에는 200년 넘게 살아온 느티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은 여름이면 그 그늘에서 쉬었고, 아이들은 나무 가지를 타고 놀았다. 마을에 큰일이라도 생기면 사람들은 그곳에 모였는데 그래서 그 나무를 동소 나무라고 불렀는지도 모른다. 마을을 떠나온 사람들은 그 나무를 통해 고향과 유년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고향 생각을 할 때면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이 잘생긴 그 느티나무였다. 마을에 사람들이 줄고 아이들도 보이지 않지만 1996년부터 보호수로 지정된 늙은 동소 나무는 아직도 고향 마을을 홀로 꿋꿋이 지키고 있다.
멀리서 그 느티나무 나무가 보이면 나는 이제 고향에 다 왔구나 하고 안도감을 느낀다. 동소 나무를 끼고 마을로 들어서면 제일 위쪽에 우뚝하니 시골집이 보인다. 내가 직접 지어서 더 그런지 볼수록 굳건하고 정이 간다. 2022년 겨울 집을 완공하고 이듬해 봄부터 집 앞 텃밭에 밭농사를 지었다. 마을 분에게 부탁해 밭을 갈고 검정 비닐을 씌웠다. 그리고 심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작물을 심었다.
넝쿨 올라갈 지주대를 세우고 오이를 심었고, 옥수수, 가지, 상추, 케일, 땅콩, 고추, 파, 고구마, 토란, 호박 그리고 수박과 참외를 심었다. 농약은 한 번도 치지 않았다. 심지어 농약 치는 장비도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수확은 풍성했고 열매는 달았다. 주말에만 내려갈 수 있었기에 잡초가 온 밭에 가득했지만, 잡초 사이로 익은 과실을 찾아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땅이 참외랑 잘 맞았는지 참외는 정말로 달고 컸다. 논 농사는 직접 지을 수 없었기에 마을 분에게 맡겨놓았는데, 조상님들이 농사짓던 조상답에서 봄에 심은 여린 모가 여름에 무성하게 성장하고 가을에 황금 들녘을 이루는 것을 보았다.
지인들이 놀러오면 함께 자두 과수원에 가서 자투리 목재로 지은 정자를 구경시키고 풍경을 감상했다. 자두 나무는 몇 년은 더 커야 실한 과실을 열겠지만 가을에는 퇴비를 듬뿍 주었다. 지인들이 시골집 중 어디가 좋으냐고 물으면 나는 뜬금없이 빨래줄이라고 대답했다. 세탁기에 돌린 빨래는 강한 햇살에 한 시간이면 다 말랐다. 이불도 털어 널어놓으면 햇볕에 그을린 향기가 좋았다. 나무 가지를 잘라 빨래줄 중간을 치켜올리는 작대기도 만들었는데 이런 사소한 것들이 어릴 적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마당 한 가운데서 펄럭이던 빨래 사이로 분주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웠다.
아내와 아이들도 가끔 내려와 텃밭 일을 도와주었다. 세월이 흐른 뒤 아이들은 시골집에서 지낸 모든 일들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혼자 내려올 때면 아내의 잔소리 없이 혼술을 하면서 달을 구경하거나 동네 아저씨들과 술을 마시며 실컷 떠들었다. 농한기에 떠난 마을 단체 여행에 아내와 함께 따라가서 마을 분들과도 더 돈독한 정을 나누었고 이제 이웃 사촌이 되어가고 있다.
고향 마을에 11평 작은 집을 짓고 1년여를 살아보니 집 짓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안식처로, 가족들에게는 추억 공간으로, 지인들에게는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세상공명(世上功名) 부운(浮雲)이라 강호어옹(江湖漁翁)될 지어다’로 시작하는 옛 사설시조는 ‘고기 주고 술을 사서 취(醉)토록 마신 후에 애내곡(欸乃曲) 부르면서 달을 띄고 돌아오니 세상알까 두려운저’로 끝을 맺는다.
어느 햇살 좋은 날 톱과 망치를 들고 망설임 없이 집짓기에 나서길 권한다. 이런 좋은 경험을 혼자서만 하기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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